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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날아다니는 철새를 보았다. 그 철새를 보면서 자유를 떠올린다. 저 새들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닐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곳을 마음껏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한다. 이때, 내가 생각하는 그 자유는 나의 욕망이 마음껏 실현 되는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 옆에 있는 비둘기를 보았다. 비둘기는 내 옆에서 떠나가기 위해 막 날아 올랐으나, 금방 가라앉아버렸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비둘기가 살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제대로 날 수 없는 것이라고. 비둘기의 팔자가 참 좋다고 생각한다.

다시 창공에 있는 철새를 보았다. 그 철새는 실은 먹이를 찾기 위해 그리고 살기 좋은 곳을 찾기 위해 장소를 옮기고 있는 중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철새와 나의 삶이 별반 다를게 없다고.

철새는 먹이와 좋은 보금자리를 욕망한다. 그는 그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하늘로 날아오른다. 반면, 팔자 좋은 비둘기는 이미 배가 불러서 하늘로 향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자유의 개념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보고 있다. 그 철새가 자유로워 보이는 이유는 욕망하기 때문이었다. 욕망하는 것이 오히려 욕망이 실현된 상태보다 더 자유로워 보였다.

나는 자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그 상태를 상상하며, 그 상태를 자유로운 상태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은 욕망하며, 그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상태가 자유로운 상태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충족된 욕망은 더 이상 새를 날아오르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새가 오히려 욕망이 충족된 상태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철새는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날아 다닐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유의 개념은 다시 내가 처음 생각했던 자유의 개념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다시 비둘기를 생각해보자. 그는 음식을 욕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 능력이 퇴보하였다. 철새가 오로지 음식만을 욕망했다면, 비둘기와 마찬가지로 비행능력이 퇴보했을 것이다. 철새는 음식을 원하는 동시에, 자신이 살기 편한 보금자리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한다. 수단이 목적이 될 수 없듯이, 철새의 비행은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능력은 생존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유지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자유의 개념은 다시 욕망하며,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상태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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