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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과정을 진행한지도 1년이 넘었다. 직장 생활을 하던 도중에 직장을 그만두고 석사과정을 택한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을 다니면서도 퇴근 이후 내가 바라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배움의 깊이가 부족하다고 느꼈었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싶었다. 내가 바라는 공부는 뇌과학이었다. 뇌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매료시켰다. 뇌를 공부하는 것은 곧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고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곧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와 타인을 이해하기를 원한다. 어릴때부터 인간관계에 서툴렀지만 오히려 이러한 단점이 인간을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낳았다. 타인과 잘 어울릴 수 없었던 나를 이해해보고 싶었고 타인과 잘 지내고 싶었다. 철학이나 심리학, 뇌과학에 매료된 것은 이런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1년간 뇌를 연구했지만, 나는 아직도 인간을 잘 모르겠다. 수많은 뇌와 심리에 대한 이론들을 보아왔지만 나에게 남는 것은 별로 없었다. 현재는 너무 많은 이론들이 있으며 이론 각각은 단점을 가지고 있었고 대부분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나는 갈피를 못잡고 있다. 결국 무언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론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나의 수준에서 바라보고 생각해봐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번주는 에반게리온을 보았다. 에반게리온이라는 애니메이션의 주제는 인간이었다. 이 애니메이션을 내 수준에서 설명해보고자 한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 하지만 인간 개인은 한계가 있다. 개인을 영문으로 번역하면 individual이라는 뜻이며 in은 “not”을 뜻하고 dividual은 “나눌 수 있는”으로 번역할 수 있다. 즉 나눌 수 없는 것이 개인이다. 나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개인은 독립적이다. 독립적인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바라볼수록 그 안에 있는 심연을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안에서는 아무것도 찾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외부로 눈을 돌리게 된다. 피상적인 수준에서의 자기 인식은 거울을 이용한다. “거울”이라는 것은 인간 자신을 인식하기 위해 어떤 물체에 자신을 비춰보는 것이며 이로 인해 자기를 인식한다. 하지만 이 거울은 피상적인 수준의 자기인식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인간은 타인이라는 거울을 이용하여 자신을 비춰본다. 여기에서 인간의 취약성(variability)이 드러난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인간의 취약성 때문에 타인을 통해 자신을 비춰보지만, 이는 수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타인이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면,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지만 타인이 자신을 제대로 인식해주지 않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없는 것이다. 작중 등장인물들은 모두 누군가에게서 버려진 경험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는 어릴적 아버지에게서 버려졌고, 어머니 없이 자랐다. 아스카는 어릴적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했고, 아야나미 레이는 부모가 없다. 이들은 모두 어릴적 사랑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긍정하지 못한다. 이들은 모두 누군가가 자기를 필요로 해주길 다시 말해 자기를 소중히 여겨주길 원한다. 이카리 신지는 아버지에게 상냥함을 요구하고 아스카는 엄마에게 엄마이기를 포기하지 말라고 요구하며 아야나미는 자신을 소중히 해주길 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작중에서 모두 좌절되며 신지의 아버지는 냉점함으로 신지를 대하고, 아스카의 어머니는 자살을 택하며 아야나미는 이용되어질 뿐이다. 이들의 어릴적 기억은 왜곡된 인간 관계로 발전하여 신지는 의존성을 띄고 아스카는 배타성을 띄며 아야나미는 무심해진다. 이들 각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음의 벽을 공고히 하고 다른 이를 대한다.(작중에서는 이를 AT field라 명명한다.) 배타성은 자신이 가진 기억과 마음을 상대에게 공유할 수 없게하여 타인이 자신을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들고, 무심함은 타인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기 때문에 관계를 단절시키며 의존성은 자기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로 인해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다른이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이루고 싶지만 이해 받기 어려운 행동을 하기 때문에 이 욕망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며 이들의 문제점이 나에게서도 발견된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카리의 의존성은 나에게서 모든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소망으로 드러나며 아스카의 배타성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아야나미의 무심함은 다른 이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기 때문에 조언도 충고도 하지 않는 나로 드러난다. 위의 등장인물은 각자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나에게서는 이러한 문제점이 동시에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 절망적인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어찌할 수 없다. 살아있는 생명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나도 나름대로 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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